건축적 구조와 개념적 실재로 진입하는 통로
최태만(미술평론가)
숯을 공간에 매달아 그 장소에 특정한 의미를 부여하는 박선기의 작업은 과거와 현재, 존재와 무, 실재와 환영(illusion), 가변성과 영속성, 동양과 서양 등의 경계를 뛰어넘는 매력적인 것임에 분명하다.
먼저 그가 사용하고 있는 숯이란 물질에 대해 고찰해 보자. 숯은 전통적으로 한국인들에게 ‘정화(淨化)’란 상징적 의미를 지닌 물건으로 일상 속에 자리해 왔다. 단적인 예로 한국인들이 가장 즐겨 섭취하는 염장식품인 간장은 삶은 콩을 으깨 벽돌형태로 만들고 그것을 그늘에서 잘 건조시킨 메주와 소금, 물을 섞어 발효시킨 것으로서 큰 오지항아리에 으레 붉은 고추와 짚으로 만든 새끼줄과 함께 숯을 넣었다. 이때 숯은 발효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부패를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넣었던 것이다. 나쁜 균의 침투로부터 새로이 태어나는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과거 한국인들은 자손이 태어나면 어느 기간 동안 대문에 새끼줄을 매고 그 줄에 숯을 매달았다. 그러면 그 집을 방문하려던 사람도 출입을 자제하였다. 오늘날 한국에서 이러한 전통은 사라졌으나, 최근 환경생태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숯은 전자파의 차단, 정수(淨水), 공기정화, 무기질 섭취 등의 이유로 다시 각광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숯이 지닌 효능에 대해 과학적으로 입증되었다고 할지라도 박선기의 작품에서 중요한 재료이자 매체인 숯이 이러한 상징적 의미를 고려한 결과라고 볼 수는 없다. 일단 그의 작품이 건축물의 특정 부위나 혹은 건축적 구조의 재구성이란 측면이 두드러지는 만큼 불에 탄 식물이 남긴 탄소덩어리에 과도한 상징적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일론 줄에 매달아 형태를 구성해가는 그의 작업방식은 그가 의식하였든 그렇지 않든 새끼줄에 매단 숯을 연상시킨다. 이때, 숯은 공간에 흑백의 드로잉을 하기 위한 도구의 차원을 넘어 이 공간 내부를 깨끗하게 만드는 심리적 위생처리의 역할도 수행하는 것으로 이해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그러나 그가 추구하는 형태가 건축으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주목할 때 다른 차원에서의 접근도 필요하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현대적인 도시인 밀라노에서 작업하고 있다. 이방인인 필자가 보건대 밀라노는 전통과 현대가 혼성된 매력적인 도시로서 후기고딕 건축양식의 밀라노대성당과 함께 현대디자인, 패션의 흐름을 주도하는 창조의 도시이기도 하다. 이런 점을 그는 일상적으로 의식하고 있는 것일까. 중요한 것은 그의 작품 속에 그가 몸담고 있는 도시의 풍경이 실루엣처럼 또는 기억의 잔흔처럼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까닭에 그의 작품에서 한국인의 무의식 속에 잠재된 정화의 도구로서 숯에 대한 신뢰가 잠재해 있다는 사실과 아울러 밀라노에서 발견할 수 있는 전통과 현대성의 혼성을 발견할 수 있다.
필자로서는 그가 왜 하필이면 숯과 같은 연약한 물질을 선택했는지 궁금했는데 그의 작품을 보며 거의 순식간에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현대미술운동의 하나인 아르테 포베라(Arte Povera)를 떠올렸다. 이것이 비교하기를 좋아하는 이론가의 습성 때문일까. 아무튼 숯을 매단 그의 작업은 석탄으로 꽃을 만든 야니스 쿠넬리스(Jannis Kounellis)를 연상시킨다. 이 점에 대해 작가는 필자에게 분명하게 밝혔다. 아르테 포베라 계열의 작가를 알고 있지만 그들은 이미 대가의 반열에 올라있기 때문에 접촉할 기회도 거의 없고, 이미 역사적 평가가 이루어진 작품을 젊은 자신이 뒤쫓을 이유는 없다는 점을. 필자는 그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한다. 필자가 주장하고자 하는 바는 박선기의 작품이 아르테 포베라 경향의 작가 누구의 작업을 추종한 것이거나 형태적 유사성이 높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쿠넬리스의 석탄이나 요셉 보이스(Joshep Beuys)의 비계덩어리처럼 지극히 일상적이고 어떤 맥락에서 비천한 물질이 미술의 영역 속으로 들어옴으로써 물질을 고상하고 숭고한 것으로 숭배해온 미술에 대한 이의제기를 했던 그들의 정신이 박선기의 작품에서도 나타나고 있음을 확인하고자 했을 따름이다. 다만 개념적 특징이 강한 보이스나 쿠넬리스의 작품이 형태의 해체 -결국 실내온도의 변화에 따라 비계덩어리는 녹아내릴 것이고, 석탄덩어리는 재로 환원할 것이므로-를 추구한 것이라면 박선기의 작품은 오히려 그 반대지점에서 연약한 물질을 사용하여 견고한 형태를 구축하고자 했던 점에서 서로의 입장이나 방향의 차이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그의 작품에서 숯만큼이나 중요한 요소인 나일론 줄은 한 올인 경우 그 존재가 시각적으로 미미할 수 있으나 수많은 줄로, 그것도 서로 중첩된 것으로 나타나면 단지 숯을 매달고 지탱하는 지지대의 기능을 넘어선 것이 된다는 사실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검은 숯덩어리와 조응하여 공간을 활성화시키는 요소가 된다. 어떤 경우 줄의 존재가 제시됨으로써 숯이 단지 허공에 부유하는 것이 아니라 견고한 구조 속에 고정된 것임을 지각하도록 만든다. 그래서 숯으로 만들어진 사각형이나 기둥과 같은 형태가 투과성이 높은 것이긴 하지만 매스와 볼륨을 지닌 것으로 지각되는 것이다. 특히 형태에 있어서 고대 그리스 건축이 추구했던 조화와 질서를 추구하고 있으나 그 결과는 다분히 풍부한 농담(濃淡)을 지닌 수묵산수화를 연상시킨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서 농담의 차이는 여러 겹으로 겹쳐지거나 펼쳐진 숯으로부터 파생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나일론실이 주는 시각적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즉, 나일론실은 하나일 때 투명하지만 여러 개가 모일 경우 공간을 활성화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다. 또한 그가 만든 형태가 견고한 것이라기보다 부서지기 쉬운 것이란 점도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예컨대 그가 만든 기둥은 완전한 형태를 지녔다기보다 ‘구축되고 있는 것’으로 제시된다. 이것은 수묵산수화의 여백과도 상통하면서 한편으로 이러한 형태의 가변성이 견고한 형태로의 지향이나 회귀란 우리의 심리적, 지각적 기대를 자극하는 것으로 해석할 여지도 있다. 여기에서 그가 추구하는 주제가 존재와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불에 탄 잔흔인 숯은 그 자체로도 실재이면서 동시에 그 원형이었던 식물의 부산물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그가 공간에 설치해 놓은 사각이나 원의 기하학적 형태나 기둥과 같은 것은 실재이면서 동시에 허상이다. 기둥이면서 기둥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는 기둥이 마치 열주처럼 늘어서 있는 전시공간은 이 검은색 덩어리들의 실재가 드러나는 장소이며, 이 가상의 기둥들에 의해 장소특수성을 획득하게 된다. 이 속을 드나들며 우리는 견고성 저 너머에 있는 부서지기 쉬움 즉, 언제든지 사라질 수 있는 존재의 나약함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가 하면 부서지기 쉬운 형태가 실재가 아니라 그 너머에 있는 실재의 본질에 대해 사색할 수도 있다. 그의 작품은 단순하면서도 구조적인 형태와 그것이 설치된 장소를 이러한 생각하는 장소로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물리적 실재 너머의 개념적 실재까지 넘나들게 만드는 통로와 같은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A Passage to Architectural Structure and Conceptual Existence
By Tae-Man Choi, Arts Critic
Endowing a specific meaning to the space with charcoal suspended by nylon threads, Seon-Ghi Bahk simply stuns us. His works exists beyond the boundary between past and present, transience and permanence, reality and illusion, being and non-being, East and West.
The material, charcoal, springs from Korean traditional use of charcoal as a symbolic as well as an everyday tool of purification. In making soy sauce, one of most common preserved sauces, pieces of charcoal and red chilies bounded by straw ropes are placed inside the earthenware to prevent the sauce from spoiling and to enhance its taste. Also, until quite recently, a straw rope intertwined with charcoal was hung across the gate of a house to announce a newborn. Charcoal was symbolically used to frighten away evil spirits and to allow the purified to enter. This use of charcoal has slowly faded away today but is receiving renewed interest. Charcoal! , in our bio-environmentally sensitive age, is being used to purify water and air, eliminate odors, and absorb harmful electromagnetic waves.
His choice of charcoal as both materials and medium for his work is not the symbolic refection of this usefulness of coal piece. Moreover, as he has been featuring on restructuring architectural structures, alluding a lump of carbon to a purification symbol would be absurd. Nevertheless, his work alludes to a purifier – the coal pieces intertwined in straw ropes – whether he is aware of this or not. In that respect, charcoal ceases to be a mere piece for drawing the space black or white, and it becomes a symbol of his attending to mental sanitation – purging the inner space of his work.
However, as his pursuit comes largely from architecture, we need to look at his work from a different view. He has been working in Milan, the most modern city in Italy. Even to the eyes of a stranger, Milan is a city that combines tradition, post-Gothic architecture, with modernity. Also Milan is a city of creation in that it leads the modern fashion and design world. This panoramic experience is silhouetted in his work. As such, his work becomes an odd but very unique mixture of the old and new Milan, mingled with his trust for charcoal as cleanser, though perhaps at an unconsciousness level. In short, identity is not pr! oduced through experiencing the outer world; rather it is a created through the realization of his own shadow.
Seeking the answer as to his choice of charcoal, a very fragile material, I was at moments reminded of a modern art movement in Italy, ‘Arte Povera’. This might be an art critic’s inescapable fallacy of comparison, but his suspended charcoal appears to be affined with Jannis Kounellis’ making flowers from coal. Seon-Ghi Bahk, however, made this suspicion null. He has told me that he dose not see himself in a particular artistic tradition: ” I knew the artists affiliated with Arte Povera well, and some of them have already attained eminence from the art world, and I am too young just blindly to follow them. I choose my materials because they have a ce! rtain degree of reality”. My intention is not to line him up with the artists of the Arte Povera movement, but to show that he has an attitude not unlike Joshep Buoys and Jannis Kounellis who opposed the fine-arts canon by using tasteless or cheap materials such as coal and fat. The works of Buoys and Kounellis, though made of conceptual strength, will eventually be deco! nstructed – the fat could melt in higher temperatures and the coal wil l eventually turn into ash. In contrast, Seon-Ghi Bahk starts from the opposite – fragile material becomes strong one. It is this difference in position and directions that shows his originality.
The nylon threads are as important as charcoal in Mr. Bahk’s work. One ply of nylon barley exists but many strands, even when overlapped, go beyond their roles of fixing and supporting charcoals. Harmonized with the black charcoals, nylon threads activate the space. The very existence of layers suggests to us to feel that the charcoals are fixed in firm construction rather than they are floating in the air. Made from these materials, the pillars and quadrilaterals are highly transparent but we should not miss to see the mass and volume of them. The work has the harmony and order of Greek architecture but lead us to see the rich! shading of Korean ink paintings of water and mountain. Depth of gradation is achieved through overlapping and displaying charcoals with nylon threads. One ply of nylon threads is hardly visible but many turn the space into a flux. The construction itself seems to stand in solidity yet it is in a fragile state that demands us to imagine that the pillars as not finished forms but as being ‘under construction’. This concept of the unfinished is intentional. As he explains, his work intends to express “the essence of materials “.
This is another way of saying that transience and permanence are inseparable. However, the focus on transience is what allows permanent solidity to emerge. This comes close to the meaning of a blank space in Korean ink paintings of water and mountains.
Another theme is existence and its surroundings. Charcoal exists not only as a burnt relic, but as a by-product of plants. Similarly, the geometric shapes: quadrangles, circles, and pillars, installed in the space are as much real as they are illusive. The installation space, occupied by a colonnade of pillars that stop functioning as pillars is, where dark lumps emerge into reality, at the same time the space gets a site-specific meaning from these illusive pillars. Strolling and observing inside the space, the viewer can discover, beyond the firm non-being, the fragility of being that can easily vanish.! It is in this interplay between being and non-being that a satisfying tension is established and developed, leading us to think about the essence of existence beyond or under fragile forms. Seon-Ghi Bahk’s simple and structural work at this site-specific installation goes beyond a physical existence, the impermanence of human material culture, and shows us a passage to conceptual existe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