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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시점  박선기 작가

“산골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에게 자연은 놀이터였습니다. 그래서 나에 대한
이야기로 작업을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주제가 자연(
自然)이었고, 자연을 주제로 표현하고 싶은 것 중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바람이었습니다.”

박선기 작가는 인간과 자연, 인간과 문화의 관계를 설치 작품을 통해 표면적으로 나타낸다. 주변환경과 보는 방식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도출해내는 인간의 지각 능력에 주목하여, 존재와 이것의 근원이 되는 본질의 관계를 작품의 주요 주제로 삼는다. 재료 고유의 특성을 작품 완성의 초석으로 여기는 작가는 숯과 아크릴 그리고 크리스탈 비즈 등의 작은 조각들을 조합하여 구성체를 만들고, 이를 공중에 매닮으로써 작품과 공간 그리고 관람자 사이의 균형을 의도한다.

Q/H.art:

작가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하신 계기가 있으셨나요?

A/박선기:

저는 경상북도 산골 아주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은 일하러 나가시고, 혼자 산이나 들에서 놀던 생각이 나는데요, 그렇게 친구가 많지 않은 유년 시절 성 베네딕도 수도원 재단의 중학교에 입학하고 미술부에 들어가면서부터 ‘미술(美術)’은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된 것 같습니다. 중학교의 미술부에 들어가 미술에 대한 기초를 배우기 시작하였고, 중앙대 조소과에 입학하면서 자연스럽게 작가의 길에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Q/H.art:

밀라노 유학과 그 시기 유럽에서 활동하셨던 작품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박선기:

유학시절, 처음 몇 년간은 개념적인 작품에 치중하여 작업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문득, 지금하고 있는 이런 작품들이 나를 대변하고 나를 표현한 것이라 볼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들었고, 주변에 너무나도 비슷한 작품들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나만의 작품 소재를 찾다가 자연적인 것으로 접근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자연(自然)에 대한 주제로 자연 소재를 건축 문화에 접목 시키며 작업을 하게 되었고,
자연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숯’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숯을 매다는 작가로 알려져있으나, 유학 초기에는 굉장히 다양한 재료를 사용했었습니다. 자연을 소재로 선택하면서
나무를 태우기도 하고, 돌을 매달아 작업을 해보기도 하고, 좀 더 자연재료를
다양하게 써보면서 작품을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숯을 지속적으로 사용하면서 나만의 이미지를 구축하기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Q/H.art:

작품 시리즈 중에서 ‘시점 놀이’ ‘Point of view’에 대한 설명과 그 생각들이 현재에는
어떠한 의미인가요?

A/박선기:

‘시점놀이’는 말 그대로 시점(視點)놀이 입니다. 사람들은 사물을 관찰할 때 눈으로 본다고 믿지만 사실은 관념으로 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이 사실에 질문을 던지고자 이 작업을 시작하였고, 2차원 공간에 3차원을 구현하는 회화의 개념인 원근법을 3차원 조각에 넣어 보았습니다. 한 시점에서 보면 사물의 정확한 형태가 보여지나, 살짝 한 발자국만 옆으로 자리를 옮기면 일그러진
형태로 이를 보고있는 관객은 불편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다시 정확한 형태가 보여지는 곳으로 이동하여
그 곳에서 편안하게 작품을 감상하게 됩니다.

이 모습이 바로 우리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관념으로 바라본다는
사실을 의미하며, 이 작품들을 통해 우리가 바라보는 모든 것들이 과연 진실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자 하는 작업이 바로 시점놀이입니다.

사물을 바라보는 시점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서 시작된 이 작업을 통해
나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대 사회를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선(視線)
혹은 시각(視覺)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Q/H.art:

혹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생각의 변화(transform)가 있으셨나요?

A/박선기:

질문에서 말하고자 하는 ‘생각’이 어떤 것을 의미하느냐에 따라 변화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작업을 하다보면 어느 부분은 변화가 되기도 하고, 또 어떤 부분들은 지속적으로 지켜진다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부분이 작가들이 스스로 지켜가는 예술의 철학이기 때문에
그 쪽 방면의 생각은 변화 된 적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작업을 하면서 마딱드리는 부분들(예를 들면 작품 재료나 설치 방법등)은 시간이 지날수록 효율적인 방법들을 찾는 편이기 때문에
그런 것들에 관한 생각은 계속해서 변화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의 변화야 말로 정체된 작가의 일상에서 활력이 되고 미술이
추구하는 창조성에 부합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작가의
삶이 더없이 피곤할 수는 있으나 제일 좋은 작가의 길이란 걸 알고 있으니까요!

Q/H.art:

‘바람을 좋아하는데, 그것을 작품으로
표현하는 방법으로 나무/돌/숯을 매달아 보았습니다.’라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작가님께 바람風 이란 어떤 의미 인가요?

A/박선기:

산골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에게 자연은 놀이터였습니다. 그래서 나에 대한 이야기로 작업을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주제가 자연(自然)이었고, 자연을 주제로 표현하고 싶은
것 중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바람이었습니다. 그만큼 자연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바람인데요,
작업실에서 일하다가 잠깐 테라스로 나가 의자에 앉아서 맞는 바람, 드라이브 중에
음악을 크게 틀고 선루프를 열고 맞는 바람들…그 크기가 세고 약한 것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감성을 느끼는
원초적인 것…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주고 일상에서 맞이하는 잠깐의 힐링 또는 행복, 나에겐 바람이 이런 의미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Q/H.art:

바람처럼 여러 방향으로 흔들렸던…힘든 시기도 있으셨나요?

A/박선기:

힘들다라는 생각도 상대적이기 때문에 어떤 한 시점이 힘들었다고 느껴진 적이 있다기
보다는 예술가로 산다는 것, 그 자체가 늘 바람처럼 흔들리는 삶 같습니다.
나 뿐만이 아니라 모든 예술가들의 마음은 다 똑같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할지, 불확실한 미래에 인생을 걸어야 할지 말지, 작업을 계속 해야할지 말아야할지 등의 고민들이 시작되는데, 이런 고민들을 평생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직업이 바로 이 예술가라는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나 또한 똑같은 고민을 했고, 어떤이들의 눈에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예술가라고 보여질지는 모르나 예술가라는 직업 자체가 안정적인 직업이 아니기 때문에 늘 불안감을
안고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예술가라는 직업으로 살아가는 것은 한 평생동안 가슴 한켠에 불안이라는 주머니를
간직한 채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H.art:

한국을 넘어 중국/홍콩을 비롯한 유럽권에서도 계속적인 작품설치 러브콜을 받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많은 프로젝트
중 특별히 신경쓰고 계신 프로젝트가 있으신가요?

A/박선기:

어떤 작품이든 나에게는 다 특별합니다. 나라별로 프로젝트의 성격들이 각기 다른만큼 다양한 작품들을 할 수 있어서 작가로서 큰 영광이고,
작품을 선보이는 것은 예술가 박선기를 보여주는 것과 같은 의미이기 때문에 어떤 프로젝트가 되었건 다른 비중을 두지 않고
똑같이 신경을 쓰게 됩니다. 그렇기에 나에게 책임감이 부여되지 않은 프로젝트는 단 하나도 없습니다.

Q/H.art:

이미 성공한 작가라는 대중들의 일반적인 인식이 있습니다. 앞으로의 바람(바램)을 여쭈어봐도
될까요?

A/박선기:

많은 분들이 그렇게 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하지만 나 스스로 표현하자면 그렇게 생각되지 않습니다. ‘성공’이라는 단어 속에는 여러 의미가 내포되어 있지만 다른 작가들보다
운이 좀 더 따라서 많은 곳에서 작품을 선보일 기회가 많았고, 그래서 많은 분들이 제 작품을 많이 알아봐주시고
좋아해주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의 작품들을 통해 미술이라는 장르가 대중들의 인식에 좀더 가까워지고 있다면 그것이
좋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까지 누구보다 열심히 달려왔지만, 내가 추구하는 예술에 다다르기엔 더 달려야하고, 그래서 끊임없이 계속
달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좋은 작품, 깊이 있는 작품을 하는 좋은 작가라 불려지는 그런 바람을 가져봅니다.

“숯은 내가 오랜 기간 사용해온 재료이다. 생성과 소멸이라고 할 수 있는
자연의 이치를 함축한 가장 순수한 형태의 소재라고 할 수 있다”

인터뷰_정상민 아트디렉터

이미지_박선기스튜디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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