숯과 나일론 줄로 엮어낸 흑백의 미학

설치미술가 박선기

 

“다 있으면 재미없잖아요. 꽉 채워져 있는 것 보다는 조금은 빈 듯한 느낌이 좋아요. 만들어진 부분보다 깨진 부분이 더 중요하고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최대한 본질에 다가갈 수 있도록 단순화시키려고 노력하지요.”

숯을 나일론 줄에 엮어 만든 계단 모양 작품의 중간을 왜 비어있게 만들었느냐는 질문에 대한 설치미술가 박선기(41)씨의 대답이다. 박 작가 작품의 주재료는 ‘정화’(淨化)의 상징적 의미를 지닌 숯이다.

“불에 탄 나무의 잔흔인 숯은 그 자체로 에너지원입니다. 한편으로는 흙에서 나와 흙으로 돌아가는 자연의 순환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존재이기도 하지요.”

숯을 이용한 박 작가의 주요 모티브는 계단과 아치, 기둥 등 건축물의 특정부위나 건축적 구조다. 숯과 나일론 줄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흑백의 풍경은 풍부한 농담과 여백을 지닌 수묵산수화를 연상케 한다.

“숯을 엮는데 사용하는 나일론 줄은 화학섬유입니다. 자연물인 숯과 대비되는 문명의 성격을 지녔지요. 숯과 나일론 줄의 만남을 통해 존재를 표현하려고 했었지요.”

과거에 그랬었다는 말이다. 지금은 서정적이고 시적인, 그래서 감성을 두드릴 수 있는 작품을 만들기를 원한다. ‘조합체’(Aggregate)다. ‘재’의 전 단계이자 에너지의 끝, 그리고 어두움 불안함 외로움 등 다양한 의미를 가진 숯을 통해 삶의 본질과 존재의 이유를 표현해 내고자 하는 것이다. 박 작가는 1994년 중앙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하고 밀라노 국립미술원으로 유학을 떠나 11년간 유럽각지에서 활동을 벌이다 국내 고객들의 작품 제작 요구에 못 이겨 귀국했다. ‘잘 팔리는’ 작가다. 서울 청담동 신세계 ‘Boon the shop’과 웨스틴 조선호텔, 안성 3Ÿ1운동 기념관 등에 작품이 설치돼 있다, 며칠 전인 지난 11월말에 삼성물산 서초동 본사사옥과 장충동 신라호텔의 1층 로비에 대형 작품 설치를 마쳤다.

“유명세와 물질적 여유가 작가에게 무슨 도움이 될까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스스로를 해치는 결과가 될지도 모르지요. 나중에 좋은 작품을 만든 작가로 기억되고 싶어요.”

3,000. 지금까지 박 작가의 손에서 빚어진 작품의 숫자다. 다작(多作)이다. 다작이었기에 오늘의 흔들리지 않는 작가가 될 수 있었다고 그는 믿는다. 다작의 이면에는 지치지 않고 작업하는 끈질김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숯으로 빚어낸 가상의 건축물은 ‘존재’를 돌이켜 볼 수 있는 사색의 기회를 제공한다.

 

김중근 기자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