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담숲 옆 미술관
벚꽃 개화 소식이 전해짐과 동시에 겨우내 닫혀 있던
화담숲의 문이 활짝 열렸다. 상춘객들은 숲에서 봄볕을 즐겼고,
숲 옆 미술관에 들러서는 빛의 마법에 빠져들었다. 에디터 조한별
4월 중순, 경기 광주에 위치한 곤지암리조트는 봄기운을 알아챈 사람들로 북적였다. 막 꽃을 피운 벚나무며
개나리를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화담숲으로 모였다. 수도권 인근인 데다 유려한 산책로 덕분에 관광 명소로
알려진 화담숲 옆에는 미술관 ‘모아뮤지엄’이 자리해 있다.
실제 문을 연 것은 지난해 10월께였지만, 본격적으로 대중을 맞은 건 이번 봄부터다. 산중 바위 위에 자리한 모아뮤지엄은 자연을 감상하기
위해 찾은 사람들에게 뜻밖의 선물이 된다. 자연이 곧 예술이고 예술이 또 곧 자연이기에, 모처럼 나온 나들이에서 자연과 예술을 접하며 여러 가지 감상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모아뮤지엄은 ‘꼼 데 가르송’의 건물을 작업해온 일본 출신 건축가 가와사키 타카오가 설계했다.
그는 모아뮤지엄의 건축물을 구상할 때 가장 먼저 자연과 조응하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숲속이라는 지형적 특징을 살려 사방이 자연과 통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화이트 큐브로 불리며
외부와 격리된 일반적인 미술관들과 달리 안과 밖이 창문과 길로 자연스럽게 통하는 건물을 완성했다.
이렇게 자연과 함께 어우러진 미술관 모아뮤지엄이 최근 새롭게
준비한 전시의 주제는 ‘빛’이다. 숯을 매단 설치 작품으로 알려진 박선기 작가의 개인전 ‘빛을 걷다’에서 탁구공, 거울 등 여러가지 소재를 활용해 빛의 다양성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빛을 주제로 한 작품을 생각하게 된 건 우연히 접한 앤티크 등 때문이었어요. 오랫동안
앤티크 제품을 모아온 컬렉터의 것이었는데, 이제껏 한번도 공개한 적이 없었죠. 그 등을 보고 나서 아름다운 물건과 오랜 역사를 가진 물건들을 세상에 보여주고 싶었고, 거기에
좀 더 의미를 담아 예술적으로 표현해보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1900년대에 제작된 색색의 앤티크 조명을 보니, 그것을 한번 활용해보고 싶어지더군요.
조명은 빛을 위한 물건이니 빛과 그림자에 대해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됐고요.” 박선기
작가는 빛과 그림자를 주제로 하고, 빛의 성질을 다각도록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다. 그 중에서도 4500개의 탁구공을 매달아놓은 작품 ‘조합체
20170207’은 보는 이를 단숨에 압도한다. 암막 안으로 들어가면 형광의 점들이
공중에 떠 있는 장관이 펼쳐지는데, 이는 마치 무중력 상태의 우주에 와 있는 듯 몽환적인 느낌을 준다.
“탁구공에 형광색을 칠한 뒤 규칙적인 간격을 두고 매단 것이에요. 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는 어둠 속에서 무언가 빛나고 있죠. 바로 비가시광선의 힘이에요. 이것은 보이지 않는 빛, 우리가 쉽게 생각하지 못하는 빛의 또 다른 성질이라고 할 수 있어요.”
또 전시의 계기가 된 앤티크 조명을 보면서는 오래된 빛에 대해 생각했다. “분홍색
조명은 제 작업실을 재현한 공간에 달았어요. 현재 존재하는 공간의 빛과 앤티크 조명이 상징하는 과거의 빛을
공존하게 한 거죠.” 빛의 시간성에 대해 말하고자 한 것이다. 또 다른
방에는 초록색 앤티므 조명과 그림자가 전부다. 조명의 실체와 그것이 만들어내는 빛 그림자가 반복해 펼쳐지면서
공간을 가득 채운다. 빛과 그림자는 서로 상응하며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된다.
박선기 작가의 주된 작법은 천장 위에 물체를 매달아두는 것이다.
보통은 숯을 매달았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탁구공, 거울, 구슬, 앤티크 조명 등으로 다양하게 시도했다. “매달아둔다는
행위 자체가 자유로운 것이라고 생각해요. 자유롭게 움직이잖아요. 반면
매달림으로써 흔들리는 것도 있죠. 그렇기 때문에 긴장감도 생기고요. 그런 면에서 매달려 있다는 것은 지구상의 수많은 존재가 가진 성질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작가는 때때로 잔바람에 흔들려 불안하기도 하고, 어딘가에 매여 있지 않아 자유로운 존재들의
떨림 같은 것을 말했다. 그의 말대로 매다는 방식이 존재의 성질을 표현하는 방법의 일환이라면,
210개의 직사각 아크릴 거울을 수직으로 매달아 완성한 ‘조합체
20170303’은 그의 작법 의도가 가장 효과적으로 구현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수백 개의 각도에서 물체를 반사하는 거울은 거울에 비친 관람자에게 수많은 존재를 보여준다. 혼돈과 허구, 분열된 자아와 참된 자아 등 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함축하기도 한다.
물론 그와 동시에 거울에 반사된 빛과 그림자는 현란하게 조우하며 웅장한 무게감을 만들어낸다. 빛이 꽤 다채롭게 펼쳐진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오는 봄, 숲속 미술관에서 빛의 마법에 빠져보기를.